월간 바둑

반상반외週酒Talk
'의(醫)무(武)예(藝)' 아우른 생활의 달인 송경식 박사
2009-08-07 스크랩
▲ 송경식 박사와 부인 송인자 여사
최선의 삶을 위해 바둑의 즐거움을 경계합니다'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의 첫인상은 인터뷰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실마리다. ‘인터뷰의 80%는 사전정보로 이루어진다’는 상식과 충돌하는 일이긴 하지만 대상에 관한 사전정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직관으로 그 사람이 가진 ‘날 것’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싶다면 사전정보 없이 마주쳐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인터뷰 대상과 처음 마주보는 순간만큼은 사전에 수집된 머릿속의 정보를 잠시 지워두는 게 좋다. 이 작은 깨달음은 예정에 없었던 첫 만남부터 돌발적으로 무모하게 이어진 인터뷰의 선물이다.

32권의 저서를 가진 저명한 한의학, 교육학 박사이며 가전으로 전수된 종합무술 고단자. 프로그래머를 셋씩이나 고용해 바둑사이트를 만들만큼 바둑을 좋아하면서도 ‘최선의 삶을 위해 바둑에 깊이 몰입하는 즐거움은 경계한다’는 송경식 박사(전 미주 한의사 총연합회 회장, 현 텍사스 한의사협회 회장). 그 별난 사람, 별난 바둑사랑을 들여다본다.

6월 23일. 한 남자가 김철중 三단 부부와 함께 서울 중구 초동에 있는 세계사이버기원(사이버오로 cyberoro.com) 사무실을 방문했다. ‘아마바둑의 황제’로 군림하다가 입단 이후 은거한 도인처럼 조용히 지내온 김 프로하고 어떻게 동행이 됐는지 모르지만 이 남자에 관해서는 약간의 사전정보가 있었다.

1. 미국에서 왔다. 2. 저명한 의학박사다. 3. 바둑을 좋아한다. 4. 10여 년 전부터 사이버오로 곽민호 부사장과 인터넷 교류가 있었다. 5. 오로대국실에 hwata라는 대화명을 가지고 있다. 6. 오프라인에서는 이번이 첫 만남이다.

그의 얼굴을 처음 본 찰나의 느낌은 ‘날카로움에 가까운 광물질의 단단함’이었다. 건강을 위한 단순운동이 아닌 고도의 육체수련을 거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도(氣度)가 물씬 풍겼다. 혹시, 무술 같은 거 했나?

이 사람, 나이가 몇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먼저 고개를 쳐든 이유는 검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 짧은 백발과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이 주는 언밸런스 때문일 것이다. 흰머리는 노년의 상징인데 짧은 스포츠머리에 청년의 얼굴을 가진 데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긴다. 찰나의 직관, 이미지스캐닝으로 뽑아낸 결론. 이 사람, 기인(奇人)이구나.

김 三단의 소개로 인사를 건네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전승 한방병원(傳承 韓方病院) 원장 송경식. 음? 풍기는 기운으로 봐서 무술이나 그 비슷한 종류의 직업을 가진 명사인줄 알았는데 한의학 박사라니.

평소 동패들과 이런저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섬세한 눈썰미’의 소유자임을 한껏 뻐겨왔건만. 그래 맞아, 라며 박수를 보낸 인간들은 다 뭐란 말인가. 아니, 내 안목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살짝, 실망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후에 다시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어차피 곽 부사장하고는 오랜 회포를(비록,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버공간의 교류였지만) 풀어야 하고 뭔가 ‘꺼리’가 될 거 같은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송 박사와 김 프로가 한국기원을 방문하고 돌아온 시간이 오후 6시경인데 한국기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마바둑의 강호 임동균 7단과 동행했다. 사이버오로의 ‘취신선’이란 대화명으로 잘 알려진 임 7단은 이미 불그레한 얼굴로 사이버공간을 횡행중인 미명(美名)을 고스란히 입증하고 있었다.

흠, 김 三단의 주량도 만만치 않다던데 공연히 잘못 끼어들어서 사망신고를 하는 건 아닌지,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귀 언저리 후두부를 강타하고 지나갔으나 아무튼 곽 부사장의 안내로 명동에 있는 한정식 전문식당 ‘진사댁(進士宅)’으로 이동한다.

식당 안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 三단 부부와 송 박사가 동행하게 된 사연이 풀려나온다. 김 三단 부부에게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유학중인 딸이 있는데 그곳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송 박사와 만나게 됐다고 한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우연이 아니다. 바둑이라는 분명한 인연의 고리가 있었으니까.

송 박사는 사이버오로에 ‘hwata’라는 대화명을 가진 아마 유단자다. 그것도 그냥 아마 유단자가 아니고 ‘취신선’과 호선으로 겨루는 왕별7단이다. 이 정도의 기량을 갖추려면 한번쯤은 바둑에 ‘미쳐야’하는데 정작 인터넷으로 바둑을 즐기는 횟수는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적고 직업도 바둑과 거리가 멀다.

직업이 뭘까. 센스 있는 월간바둑 독자라면 'hwata(화타)'라는 대화명으로 금세 ‘감’을 잡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친절봉사를 발휘해볼까.

송 박사가 대화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화타(華陀 145~208)는 중국 한말(漢末)시대 전설의 명의(名醫)다. 본명은 부(敷), 자(字)는 원화(元化).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 보셴(毫縣) 출생이다.

외과에 특히 뛰어나 중국에서는 지금까지도 '외과의 비조(鼻祖)'로 통하며 내과부인과소아과침구 등 의료 전반에 두루 통하였고 치료법이 다양하면서도 간명한 처방으로 유명했다. 화타가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외과 수술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마비산(麻沸散)’이라는 마취제를 사용해 위장 절제수술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신수련법과 섭생에도 뛰어나 5가지 동물의 모습을 본떠 ‘오금희(五禽戱)’라는 수련법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화타와 관련된 설화는 수도 없이 많은데 그중 ‘삼국지’에서 촉(蜀)의 명장 관우(關羽)가 화타에게 독화살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바둑을 두었다는 일화는 그럴 듯한 그림까지 남겨져 바둑 마니아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설명이 좀 길었나? 아무튼 송 박사는 한의사라는 얘기다. 듣다보니 평범한 한의사가 아니다. 한의학은 물론, 교육학 박사학위와 32권의 저서를 가진 명사. 전 미국 한의사 총연합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텍사스 한의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UPN채널, 내셔널TV, 시카고TV 토크쇼, 텍사스 KXX TV, 댈러스모닝뉴스 등 수많은 방송출연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런데 식사도중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송 박사가 육류는 물론, 해물까지 입에 대지 않는 완벽한 채식주의자라는 것. 우리는 송 박사의 당당한 체구를 보고 막연히 식성도 좋고 남들이 즐기는 건(이를테면 술, 담배) 모두 즐기리라 생각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먹지 않는 음식을 잔뜩 차려놓은 셈이 됐으니 이를 어쩐다. 종업원을 호출해 가능한 채소요리를 다시 부탁하고 화제도 자연스럽게 식습관으로 넘어갔다.
“죄송합니다. 미처 신경을 못 썼네요. 그런데 언제부터 채식을 하게 된 겁니까?”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더 밝혀지고 앞에서 살짝, 실망했던 ‘안목’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송 박사는 한의사일 뿐 아니라 태권도는 물론, 태극권, 소림권 등 가전무술을 전수받고 젊은 시절 미8군, 공수부대 등에서 지도사범까지 지낸 종합무술 고단자였다. 험, 그러면 그렇지. 한눈에 알아봤다니까.

채식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일까. 어린 시절부터 무술을 익혀 대회에도 나가고 어른들과 대련도 많이 했는데 어느 날 낙법을 시도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쳤다.

“정말 심하게 다쳤어요.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는데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고 5년 동안 병석에 있었죠. 나중에는 ‘가망이 없다’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죠. 음식도 못 먹고 장기는 전부 상한 데다 걸핏하면 피를 토할 정도였으니까요.”

송 박사는 ‘내가 살아난 것은 모두 한의사였던 아버님 덕’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종합병원에서 손을 놓은 아들의 목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의 체질을 연구해 치료에 양방과 한방을 모두 동원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기적이었죠. 어느 순간부터 몸의 기능이 거짓말처럼 되살아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채식을 하게 된 겁니다.”

우리는 약 1시간 동안 최고의 한의학 박사로부터 체질과 음식에 관한 특급강의를 들었다. 소양인, 소음인, 태음인, 태양인의 차이. 참깨와 들깨기름을 섞어먹는 게 좋은 이유. 오메가 3, 6, 9의 영양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송 박사는 우리가 질문을 하면 이따금씩 한 10초 정도? 말을 멈추고 소리 없이 희끗, 웃으며 바라본다. 강단에 선 교수가 질문을 던진 학생을 바라보는 눈빛. 마치, ‘아, 좋은 질문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작은 표정 하나가 좌중을 더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대화를 지루하지 않게 이끄는 호흡조절이랄까. 이런 ‘대화의 기술’은 배워둘만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골목길에서 물었다. 미국에 있는 한의사협회에도 바둑을 두시는 분들이 더러 있을 거 같다. ‘화타’가 있는데 혹시 ‘편작(編鵲)’은 없나.

‘편작’은 ‘화타’와 쌍벽을 이루는 중국의 전설적 명의다. 성명은 진월인(秦越人)으로 전국시대에 활동했다. 장상군(長桑君)에게 의학을 배워 금방(禁方)의 구전과 의서를 받아 명의가 되었고 괵나라(BC 655년 멸망) 태자의 급환을 고쳐 죽음에서 되살린 일화로 유명하다.

바로 답이 날아온다. 바둑 두는 한의사들은 있는데 ‘편작’은 없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내가 사용해야겠는데? 이런, ‘화타’만 해도 천하를 울리는 명의인데 ‘편작’까지? 욕심도 많으셔라. 조만간 사이버오로의 팬들은 전설의 명의 둘이 교대로 출몰하는 걸 볼 수 있겠다.

가족인터뷰를 약속한 7월 2일. ‘한옥마을’을 찾아 한국의 전통가옥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만한 기념사진을 찍어 선물하려던 욕심은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속절없이 묻혀버렸고 약속시간까지 늦는 바람에 체통 없이 허둥거리는 최악의 인터뷰어가 됐다.

기자는 스타일을 구겼지만 빗길을 뚫고 약속시간을 맞춰온 송 박사 가족은 최고였다. 부인은 미인, 아들은 서글서글한 호남이었고 딸은 예뻤다. 가족은 가장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비추는 거울. 기자가 그 거울에서 발견한 것은 ‘자유로움과 따뜻함’이었다.

송 박사는 81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30년이 흐르는 동안 일 때문에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가족이 함께 순수하게 여행을 목적으로 조국 땅을 밟은 것은 처음이다.

동의학원(경희대 한의학과의 전신)을 나와 한의원을 운영하다가 더 넓은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싶어서 혈혈단신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81년 11월 15일.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니 30년 전의 각오와 의지가 읽혀진다.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해 워싱턴DC로 들어갔고 무술과 바둑으로 단련된 놀라운 집중력은 그때부터 발휘됐다.

인디애나대학에서 체육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텍사스와 일리노이주에서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다(현재 텍사스 캐롤톤에서 ‘전승한방병원’ 운영).

어느 하나 쉽게 이루지 못할 것 같은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사람에겐 도무지 난관이라는 게 없었을 것 같다. 무슨 판타지소설에 등장하는 슈퍼영웅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쩐지 불편하다. 그렇군. 회의실, 그것도 칸막이만 세운 곳에 가족을 나란히 앉혀두고 거의 송 박사하고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가족들에게 고문이다. 어차피 비가 쏟아져서 한옥마을은 갈 수 없게 됐는데 아예 점심식사 장소로 옮겨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자, 그러면 무엇으로? 식단을 이야기하다가 가족의 식습관으로 이어진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송 박사는 채식예찬론자다. 특이한 건 자녀에게조차 채식을 강요하진 않는다는 것. 체질에 따라서, 연령에 따라서 적합한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인 송인자 여사와 쉡톤(Shepton)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하영은 송 박사의 영향을 받아 채식을 좋아하는데 배일러(Baylor)대학에 다니는 아들 준영은 씨익, 웃으며 말한다.

“전, 곱창도 잘 먹어요.”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어발음. 그냥 모국어를 잊지 않게 가르친 정도가 아니다. 서울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던데 송 박사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것 같다.

“저 아이들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미국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인 부모를 둔 한국인입니다. 자기들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되겠죠. 문화의 이해는 언어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는 학교에서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테니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라’고 가르쳤어요.”

음, 그런데 곱창을 잘 먹는다고? 준영은 좀 불만일지 모르지만 압도적 다수가 원하니까 점심은 인사동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山村)’으로 결정한다. 이 자리는 승용차를 가져온 김찬우 五단이 동행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비 내리는 인사동의 좁다란 골목길은 제법 운치가 있다. 송 박사 가족도 사찰색채 짙은 ‘산촌’ 풍경이 마음에 든 것 같다. 다행이다. 자리를 잡고 식단을 정한 다음 수첩과 볼펜을 뽑아드는데 하영이 천정에 줄을 매달아 식탁까지 늘어뜨린 연등을 신기한 듯 만져본다.

아이, 예뻐라. 예쁘냐? 난 네가 더 예쁜데? 흐뭇한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는 엄마까지, 한 장 찰칵! 아니, 저 인간이 여자들만 찍어주고 난 왜 안 찍어주나? 그런 생각을 할 리는 없지만 공평하게 무릎걸음으로 자리를 옮겨 건너편에 앉은 준영의 얼굴도 한 장, 찰칵! 음, 호남형의 얼굴에 무술로 단련된 탄탄한 몸매. 탤런트가 따로 없구나.

“부인이 미인이신데 어떻게 만나셨나요?”

가족을 초대했으니 이 정도는 물어야 한다. 10초쯤 말을 끊고 얼굴을 바라보며 희끗, 웃는 특유의 표정 뒤로 결혼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 과정이 허탈할 정도로 빠르다. 원래 속기취향이셨나?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겨서도 결혼 생각이 별로 없었죠. 언제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집안에서 선을 보라는 거예요.”

인연이란 그런 거다. 밤하늘처럼 막막하다가도 그 한가운데를 번쩍, 가르는 번개처럼 찰나에 이어진다. 서울예대(탤런트 최민수, 최재성 씨가 동창이란다)를 나와 현대상사에 근무하던 미모의 재원. 나이 차이가 제법 컸다. 마음에 안 들었다면 거짓말인데?

““5일 데이트하고 일주일 뒤에 결혼했어요. 딱 하나만 부탁했죠. 내 부모님과 6개월만 살아줬으면 좋겠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부모님을 모시지 못한 게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지금도 그 일이 너무 고맙습니다.”

그런데 송 박사님, 명색이 바둑마니아인데 바둑이야기가 너무 없다. 어려서부터 가전무술을 익히고 한의학을 공부했는데 바둑은 또 언제 배워서 오로 왕별7단이 되었을까.

“아버님이 바둑을 잘 두셨어요. 어깨너머로 배웠죠. 2급쯤 두셨던 거 같아요.”

당시에 2급이면 인근에 적수가 없는 ‘동네국수’ 수준.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바둑은 쉽게 손에 잡혔고 기량도 금세 쑥쑥 늘어났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로는 대국기회도 흔치 않았는데 어느새 사이버오로 최고수들이 겨루는 왕별무대에 오른 것을 보면, 작심하고 매달렸다면 프로기사가 됐을지도 모를 재능 아닌가. 알고 보니 ‘애국적 사연’이 있었다.

“미국에 이민 오기 전 동네 기원에서 원장과 바둑을 둬본 적이 있었는데 제 기력이 아마추어 3~4단 정도는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게 거의 35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뒤로 미국에 와서는 바둑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하루는 병원에서 집중력 결핍증이 있는 환자에게 바둑을 권했는데 바둑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한참 나의 설명을 듣고는 아! 고? 라고 반문하는 거예요. 그때 한국바둑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시간도 많이 투자 하게 된 거죠.”

미국은 바둑의 일본명칭 '고(go)'를 사용한다. 바둑협회도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A.G.A(American Go Association)다. 오래 전부터 일본인들이 해외보급에 앞장서 노력해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송 박사는 그것이 안타까웠나보다.

인터넷바둑이 급속하게 확산된 2000년 전후 오로1800(사이버오로 대국프로그램 초기버전)시절부터 ‘hwata'는 사이버공간의 강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고 이때 경북대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다가 ‘오로 대국프로그램’을 만든 곽민호 부사장과 알게 됐다.

‘영고수’, ‘취신선’ 같은 오로바둑의 인기 왕별7단들과도 교류를 갖게 됐는데 최근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바둑을 상징하는 전통바둑협회(Traditional Baduk Association)를 설립하고 현지 프로그래머를 고용해 대국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그래픽 수준은 좀 떨어지지만 나름 고안한 교육기능과 문답으로 건강을 체크하는 기능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송 박사는 환자들의 치료과정에 바둑을 끼워 넣는다. 바둑의 초반 구상이나 수읽기 등이 명상, 참선 같은 마음의 수련과 다를 바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도장을 차린 건 아니지만 저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술과 바둑을 함께 가르칩니다. 한국에서는 태권도와 바둑을 같이 가르치는 시도가 없나요? 시너지효과가 있을 텐데….”

태권도나 태극권이 신체수양이라면 바둑은 마음의 수양이다. 육체와 마음 어느 한쪽만 수련하는 것보다 심신의 균형을 갖춰 수련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송 박사의 말을 듣다보니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태권도의 종주국이요, 바둑의 최강국을 자부하는 우리가 이 둘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교육시스템에서는 오히려 미국의 뒤에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바둑은 반드시 직업과 분리하여 즐겨야 하며 바둑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주는 주객전도의 생활이 되면 안 됩니다.”

송 박사는 인터넷에서만 가끔 대국하고 기원이나 오프라인에서는 절대 바둑을 두지 않는다. 그건 송 박사의 바둑철학이며 인생철학이다.

바둑은 한번 몰입하면 도끼자루가 썩을 때까지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가진 정신의 유희다. 오프라인에서 바둑에 심취하다보면 자연히 업무에 태만해지고 가족에게도 소홀해진다. 송 박사의 말은, 둘수록 깊어지고 알수록 재미있는 바둑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도 바둑 그 안에 있다고 설명해준다.

바둑의 깊은 몰입으로 얻어지는 큰 즐거움을 경계하는 것은 ‘절제’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균형’이란, 살아있는 ‘바둑성인’ 우칭위엔 선생의 말씀 ‘바둑은 조화(調和)다’의 바로 그 조화. 결국, 송 박사가 추구하는 건 최선의 어울림, 최선의 삶이다.

아아, 어쩐다. 넘치게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봉사하는 의미에서 매년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해서 어느덧 32권이 되었다는 저서 이야기도 해야 하고 넘치도록 들은 체질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야 하는데….

멀리 미국하고도 텍사스 캐롤톤이 있을만한 방향으로 고개 숙여 부족한 글, 죄송한 마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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